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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그렇다고

벽력일섬의 진화, 화뢰신이 발현하기까지.(젠이츠가 보여준 한 가지)

by theship 2026. 6. 29.

내게 귀칼에 등장하는 장면 중 가장 극적인 순간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젠이츠와 가이카쿠의 결투신을 꼽을 거 같다.

무한성 애니 작화가 너무나 훌륭하기도 했고.- 진짜 압도적임.

젠이츠는 등장인물 중에 가장 병신 같았다. 늘 울어대고 소심하게 착한 인간형들처럼.

(설정 상 이름에도 착할 선(善) 자가 들어간다. 善逸. 직역하면 선함이 뛰어남 정도로 볼 수도 있겠지만 다르게 보면 " 평범함을 뛰어넘는 " 선이라는 좀 강렬한(?) 해석도 가능하다.)

할 줄 아는 스킬도 1형 기본기가 전부. 얼마나 재능이 부족했던 지(?) 진도를 빼지를 못한다.

사형이자 차후 상현이 된 가이카쿠라는 인물과 대비되는 부분.

(가이카쿠는 1형을 제외한 모든 형을 일찍이 마스터한다. 능력이 대단한 만큼 욕망도 강렬하다. 젠이츠에게 각성의 계기로 작용한 사문의 배신 정도는 안중에도 두지 않았을 만큼.)

울보 젠이츠

 

배신의 아이콘 가이카쿠

 

 

이런 발전이 전혀 없을 것 같은 유형이 초상위권에 있는 굉장한 실력자를 압도하게 되는 이유는 뭘까??.

 

괜찮다. 젠이츠. 넌 그걸로 충분해. 한 가지만 할 수 있다면 만만세야. 한 가지밖에 할 수 없다면 그걸 완벽하게 터득해라. 극한의 극한까지 갈고닦아. 

 

스승 지고로

 

 

일본의 검술 중에는 시현류(지겐류)라는 유파가 있다.

추후 사쓰마번의 강력한 군사집단으로 유명세를 떨치게 되는데 살펴보면 굉장히 흥미로운 점을 보게 된다.

스킬이 "내려 베기" 한 가지뿐이라는 거.  

그냥 이 내려 베기만 수천번, 심지어 수만번까지 훈련한다.

(나무더미를 깔아놓고, 혹은 목책을 세워놓고 그냥 내려 깐다.)

문외한인 일반인이 보기에는 그냥 단순 무식의 끝판왕이다. 베기가 아니라 무슨 도끼질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실제 공개된 약간의 수련방법을 보면 좀 웃기기까지 하다. 

시현류 수련

 

 

그런데......

이 수련 한 가지의 효과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에도막부 말기 기록에 수차례 언급된다.

(1868년 도바 후시미 전투에서 막부군 2만 명이 사쓰마 시현류 무사 4천 명에게 대패했고 우에노 관영사 전투에서는 시현류 무사에게 베였는지 아닌지를 시체만 봐도 바로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첫째, 어깨부터 배꼽 아래까지 두 동강이 났을 경우, 둘째 머리에 검의 쇠테가 박혔을 경우. 신선조로 유명한 곤도 이사미는 " 사쓰마 번 무사의 첫 칼질은 피하고 봐야 한다" 라며 그 위력을 인정했을 정도. 나무위키 참조.)

좀 과장하면

저거 하나만 쓴다는 걸 알면서도 막지 못할 정도였고 막더라도 칼과 투구가 깨지면서 두쪽이 났다는 거.

 

 

첫 공격을 의심하지 말고 삼천지옥까지 베어라. 온 힘을 다해 상대를 쳐 죽여라. 삼천세계의 땅 밑바닥까지도 가른다는 마음으로 베어라.

 

 

시현류에서는 " 첫 칼에 승부를 본다 "는 사상이 강하다. 실제 전투에서 여러 합을 주고받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일격필살이다.

젠이츠를 보자. 잠들면(혹은 기절하면) 발도와 동시에 승부가 끝난다. 

복잡한 연계기 보다,

가장 빠르고,

가장 강한,

단 한 번의 일격.

 

카이카쿠는 젠이츠를 보며 " 겨우 한 가지밖에 못쓰는 녀석 "이라고 깔봤지만, 정작 가장 기본이자 가장 중요한 제1형을 익히지 못한 것은 자신이었고, 젠이츠는 그 한 가지를 극한까지 갈고닦아 스스로 - 6형 이외의 새로운 경지인 제7형 화뢰신을 창안한다.

젠이츠는 제1형 하나 밖에 사용할 수 없었다. 얼핏 보면 상대가 안돼 보인다. 그러나 승부를 가른 것은 기술의 개수가 아니라 숙련도의 깊이였다. 많이 아는 것과 하나를 압도적으로 잘한다는 것. 그리고 그 압도의 이면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가지만을 "선택"하고 "집중" 했다는 사실이 숨어 있다는 것. 

 

우리는 흔히 다양한 기술을 익히는 것이 강해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사와 이야기 속에는 정반대의 사례가 존재한다.

젠이츠는 단 하나의 기술만으로 상현을 쓰러 뜨렸고 사쓰마 번의 시현류는 내려 베기 하나를 극한까지 단련해 일본 최강의 검술집단으로 발전했다. 상대는 그 기술이 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막아내지 못한다.(심지어 카이카쿠는 자신의 목이 베어졌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했다.)

화뢰신~!!

 

젠이츠가 드라마틱한 이유는 "재능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재능이 부족하다고 평가받았던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단 하나를 극한까지 갈고닦았기 때문이다.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실제로 할 수 있는 한 가지만을 포기하지 않고 붙잡았다. 그 작은 변화는 너무나도 느리고 보이지 않았지만 한 가지 기점으로 터져 나온다. 임계점이 폭발하는 순간이다. 화뢰신이라는 어마어마한 복리가 나타난다.

굉장히 상징적인 순간이다.

하나 밖에 할 줄 몰랐던 사람이 기존에 없던 것을 창조하는 지경까지 갔으니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창조성이라는 것은 결국 어떤 것을 반복하는 생산성에 비례한다는 사실 말이다.

천재가 아닌 이상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지듯이 영감이 파파팍 나타나는 일은 거의 없다.

수만번 그리고

수만번 쓰고

수만번 연주하고

수만번 실험하고

수만번 연구하고.

그 수만 번에서 나타나는 게 창조다. 

 

 

화뢰신이라는 궁극적인 진화는 그냥 나타난게 아니다..

셀 수 없이 반복한 벽력일섬 - 그토록 사형에게 무시 당했던 -이 어느 날 이름을 얻은 것뿐이다.

카이가쿠는 강해지기 위해 어떤 댓가를 치를지언정 새로운 무언가를 계속 찾았다,

반면 젠이츠는 내 앞에 있는 단 하나를 끝까지 지키며 반복했다.

이 두사람의 극명한 대비가 최종국면, 간지폭발의 정점을 찍는 이유이고.

그래서 내가 이 장면에 압도당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새로운 무언가를 찾느라 바쁘지만,

진짜 변화는 지금 내 앞에 있는 단 하나를 끝없이 반복하는 사람에게 찾아오는게 아닐까 싶다.

창조는 번뜩이는 영감이 아니라,

반복이 어느 날 이름을 갖게 되는 순간인지도 모르겠다.

 

 

 

ps 캐릭터 선호도 조사에서 이 장면 이후로 젠이츠가 1위를 찍었다 한다. 찢은거지 뭐.